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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16카테고리 없음 2021. 5. 25. 07:37
'행동에 옮기기'전에 생각을 하자.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양날의 검이다. ‘빠름’을 강조하는 덕에 압축성장을 이뤘지만 놓치는 부분이 생기고 부작용도 잇따른다." 아시아경제 김윤경기자 2019.7.2 내가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1박2일의 교육이 있었다. 야외에서 조별 교육이었는데 한 조당 여덟명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조별로 지도를 보고 찾아간 지점에서 퀴즈도 맞추고 조교가 내린 명령을 함깨 수행하면서 단결력도 고취시키는 당시는 꽤 인기였던 교육이었다. 우리 조엔 차장인 나와 나보다 두 살 많은 과장이 속해 있었다. 내걸린 상도 없었지만 1등을 해야겠다는 욕심으로 초반부터 서둘렀다. 그런데 여유있게 쉬면서 다른 조를 탐색만 하던 조도 있었다. 우린 속으로 그들을 '게으른 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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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15카테고리 없음 2021. 5. 7. 14:49
글쓰기는 백수의 삶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써야한다.' 고미숙저 나는 매일 '슬기로운 백수생활'을 쓰려고 한다. 글을 쓰면서 '내가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기에... 내 글을 보고 하트를 눌러 주는 사람에게는 무한한 정감이 가고 특히 댓글까지 달아주는 사람에겐 연정(?)까지도 느낀다. 온라인 상에서 이런 문제로 범죄까지 일어났다는 걸 본적이 있는데, 내가 직접 겪어보니 실감이 난다. 읽고, 쓰는 것은 분리할 수 없다. "읽은 후에 쓰는게 아니라 읽으면서 쓴다." 유영만저 나도 읽으면서 쓰려고 노력한다. 읽으면서 요약을 하고, 그 요약을 '글감'삼아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글에 이야기가 없으면 누기 읽겠는가? 아무도 읽으러 들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또한 자신이 몸소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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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14카테고리 없음 2021. 4. 29. 07:03
적게 먹는 즐거움을 누리자.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프랑스 미식가인 브리아 사비랭이 에 쓴 유명한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7남매와 부모님까지 총 9명 식구가 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 그 때는 속도가 생명이었다. 조금이라고 늦으면 김치 한 조각도 남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먹을 것도 부족하여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식습관이 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걸 병원에 입원해서야 깨달았다. 글로벌센터에서 시간제로 일하던 시절, 탕비실에 항상 유명제과회사에서 기증받은 맛있는(?) 과자들이 널려 있었다. 물론 외국인들을 위한 과자였지만, 점심먹고 배가 출출해지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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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13카테고리 없음 2021. 4. 21. 07:24
흡연자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담배를 두번 끊은 사람이 앉은 자리엔 풀도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원래 '최씨 앉은 자리엔 풀도 안난다.'라는 최영 장군 설화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만큼 담배를 끊는 것이 어렵다는 걸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난 담배를 세 번 정도 끊었던 것 같다. 맨 첨에는 군대에서 끊었는데. 너무 쉽게 끊어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교회를 나가면서 끊었는데, 이 때도 쉽게 끊었다. 그러다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다시 피우기 시작했는데, 이 경우엔 끊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금연 후유증도 나타나서 체중이 무려 15키로가 늘었는데 지금까지 줄지 않고 있다. 예전에 내가 담배 피우던 시절과 달리 요즘은 흡연자에겐 '헬조선'이다. 담배 안 피우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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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12카테고리 없음 2021. 4. 18. 14:27
영어는 자신감이다. 영어의 영자도 모른 내게 기회가 찾아왔다. 검은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물몬교 선교사들을 만난 것이었다. 중학교인지 고등학교 다닐 때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무턱대고 선교사들 앞으로 나서서 영어를 건넸다. 무슨 말을 영어로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Where are you from?'정도 였을 거다. 선교사들은 영어가 서툰 나에게 몰몬교를 전도하려고 또박또박 천천히 영어로 얘기해 주었다. 조그마한 반응이라도 해줄라치면 아주 내가 영어를 잘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당시는 내가 영어를 진짜로 잘 하는 줄 착각했었다. 그 착각이 나를 몇 십년도 더 지난 후에야 나를 영어강사로 만들어 주었다. 그 착각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내가 렉스코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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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11카테고리 없음 2021. 4. 16. 15:56
극기복례위인 克己復禮爲仁 자기의 자신을 이겨 예에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다. (논어 12편 안연 제1장)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폭력을 일삼던 사람이었다. 7남매중 중간에 그것도 외아들獨子로 자라온 나였다. 난 특별 대접을 받았으며, 내 말은 집에서는 곧 법이었고, 안하무인격으로 살았다. 거기에 내 못된 성격이 더해 져서 '백화점 진상고객'이 바로 나였다. 극기복례 물론 말은 좋으나, 내겐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허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아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채이고, 따돌림 당하고, 하는 일마다 제동이 걸렸다. 난 그것이 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아차렸다. '극기克己, 바로 그것이 문제다.'라는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난 이미 만신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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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10카테고리 없음 2021. 4. 14. 07:10
'말이 씨가 된다. 말하는대로 된다.' 라는 말이 있다. '말'하면 7년 전 이맘때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해야 한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다. 그것도 일제시대 초등학교를 다니셨다. 산수 100점을 받아서 일본인 선생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그러다 그렇게 바라셨던 일본에 80년대 말 가시게 되었다. 그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누이동생을 보러 가신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서 곁에 있던 일본인에게 말을 거셨다. '어머니의 유창한(?) 일본말로 말이다. 근데 그 일본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대기만 했다'는 걸 누이에게서 나중에 들었다. (어머니가 일제시대의 일본어를 사용했으니... ) 그 이후로 '일본어'는 물론 '일본'의 '일'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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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9카테고리 없음 2021. 4. 13. 08:12
백수에게 대박이 필요한가? 놀라고 신날 때 감탄사 ‘대박’이란 말이 자리잡은지 오래되었다. '대박'이란 원래는 명사인데 온 국민이 그 말을 좋아해서 자주 쓰다보니 아예 감탄사로까지 쓰이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헐'이란 말까지 덧붙여서 '대박'이란말을 더욱 강조하여 '헐! 대박!" 이렇게 쓰는 말이 청소년들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대박'이란 말의 어원은 두 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첫째는 '박'이라는 게 노름판에서 '판돈'을 나타 낸다고 한다. 노름에서 승부가 기려지지 않고 회가 거듭될 수록 판이 커진다. 그래서 커진 판돈을 땄을 때 '큰 판돈'이라는 뜻으로 '대박'이란 말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박’이 우리 고전소설 ‘흥부전’에서 나온 말이라고 본다. '흥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