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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백수생활 3카테고리 없음 2021. 4. 5. 07:54
'길'을 떠나자
백수란 길을 떠나야한다. 아니 쌩뚱맞게 무슨 말이냐구요?
90년대 초반부터 놀고 먹어서 거의 빈사 직전인 2011년 여름이었다. 보다 못한 마누하님이 명령을 내렸다. '하릴없이 빈둥빈둥 대지 말고 어디 자원봉사자리나 알아봐(요)'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요'를 붙였는지 아닌지는 아리숭하다.
하긴 명령이 떨어졌다고 바로 하면 백수가 안 되었을 것이었다. 마누라의 잔소리는 이제는 '소귀에 경읽기' 쯤으로 생각하면 됐으니까.
문제는 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명대로 못 살것만 같았다.
그 즈음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화성외국인노동자센터'의 원장인 한모목사님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눈이 번쩍 띄는것은 일요일에 노동자들이 많이 오니 영어 자원봉사자를 구한단다.
신입사원 시절에 영어 잘한다는 말은 들었다. 그 시절이야 영어하는 사람이 워낙 귀해서 영어로 인삿말 정도만 해도 대접받았다.
허나 영어실력은 차치하더라도 내 형편 무인지경이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두 시간 이나 걸리는 곳을 찾아 나섰다.
나말고 다른 한 분도 와있었는데, 목사님이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둘이서 격주로 봉사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
이걸 기화로 '글로벌센터'에 일하게 되었고 이어서 구청 '여행영어' 강사가 되었고 지금은 자치단체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일을 못한지 일년도 더 넘었지만...)
'마누라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20여년을 놀고 먹은 게 부끄러워서 어디 이력서 하나 내기도 어려웠던 나에게 기적이 알어난 것이었다.
그렇다 백수라고 해서 골방에만 쳐박혀 있어서는 안된다.
청년 백수는 과감히 집을 나가서 독립해야 한다. 장년백수, 은퇴백수는 해뜨면 할 일 없어도 길을 떠나야 한다.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나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만 구경해도 공부가 된다. '길'이 곧 텍스트다.
길에는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백수는 오라는 곳은 없지만 갈 곳은 많다.
또한 다른 사람은 얻기 힘든 그 귀하다는 시간도 많다.
계획이 없어도, 어딜 가야하는지 막막해도 무조건 길로 나서야 한다.
길에 답이 있으니까.
참고서적: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저